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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 Knowledges

[상식사전] 이집트 무르시 대통령 퇴진, 아랍의 봄

아랍의 봄 [Arab Spring]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아랍 중동 국가 및 북아프리카로 확산된 반(反)정부 시위의 통칭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촉발된 유례 없는 반정부 시위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반정부ㆍ민주화 시위는 집권세력의 부패, 빈부 격차, 청년 실업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분노 등이 원인이 됐다. 2010년 말 시작된 튀니지의 반정부 시위는 2011년 1월 재스민혁명으로 번졌고, 이집트는 2월 코사리혁명으로 각각 정권교체에 성공했고, 리비아에서는 10월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가 사망함에 따라 42년간 계속된 독재정치가 막을 내렸다. 또한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 예멘 대통령이 11월 23일 권력이양안에 서명함에 따라 33년간 계속돼 온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일부 국가에서 민주화 시위를 통한 혁명이 성공하자, 혁명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반면 2012년 4월 현재 알제리, 바레인, 이란, 요르단, 모로코, 이라크, 쿠웨이트, 모리타니,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등 국가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1년 봄과 여름, 이 책의 최종 편집 중에 벌어진 사태는 아직 종결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화두로 꺼내지 않을 수 없다. 2월 11일, 오바마 대통령이 사건의 “눈부신 속도” 를 적절히 거론했을 무렵 터키와 이란, 양국은 무바라크가 축출된 이집트의 본보기를 자처해왔다. 지금까지 “아랍의 봄” 운동은 튀니지(벤 알

리)와 이집트(무바라크) 및 리
비아(카다피)의 통치자를 축출한 데다 현재는 시리아와 예멘 및 바레인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벌어진 난국과 리비아와 시리아에서 자행된 살육과 폭력은 권위주의가 민주정치로 급변하리라는, 순수한 서방세계의 기대를 완전히 무색케 했다. 귀감을 주는 논객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 같은 정황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큰 문젯거리가 하나 있다. 타리르 광장에서 벌어진 혁명은 대체로 자발적이자 상향식인 것이었다. 즉 특정 정당이나 지도자가 선동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현재 창당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선거가… 9월에 개최된다면 이집트에서 언제든 가동할 수 있는 당 네트워크를 갖춘 단체는 지금껏 암암리에 활동해온 데다 적법한 곳으로 금세 탈바꿈한 무슬림 형제단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그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무슬림 형제단이 그 덕을 볼까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서양 기자는 느지막한 여름, 세계사에 길이 남을 만한 이 사태를 두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벌어진 시위의 이상주의는… 개혁을 기대해온 아랍세계를 부흥시켰다. 그러나 아직 막을 내리지 않은 리비아의 혁명은… 개혁이 어떤 파장을 가져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 이슬람주의자들의 의도와 영향력은 분명치 않다. … 리비아의 복잡다단한 난국은 새로운 질서로 진작 이행되었어야 할 아랍국가가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 불확실성은 권력의 공백기를 맞이한 오늘날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예멘에서는 강경한 이슬람주의자들이 도피처를 찾았고…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집트와 리비아 및 시리아 등에서 실세로 부상했다.


2년 전 이집트는 '아랍의 봄'이라 불린 민주화 혁명을 통해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30년 독재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사상 최초로 치러진 민주적 선거에서 뽑힌 첫 문민 대통령이 바로 무함마드 무르시. 하지만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을 고집해 자유롭고 세속화된 삶을 원하는 국민과 불화를 빚었습니다.

무르시 집권 후 이집트 최대 이슬람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에 갈수록 힘이 실린 것도 민심을 이탈시켰습니다.

거기다 '아랍의 봄' 이전보다 경제난이 더욱 악화된 게 결정타가 됐습니다.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지고 반대로 물가와 실업률은 치솟으며 민중의 분노가 폭발한 겁니다.

그러나 이집트 국민이 자기들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을 몰아내 달라고 군부에 손을 내민데 대해 비판적 목소리도 높습니다.



`아랍의 봄` 열풍으로 이집트 대통령에 오른 무함마드 무르시. 

정작 그는 대통령 집권 1년 만에 `아랍의 봄`의 다섯 번째 희생자가 됐다. 무르시가 물러나면서 아들리 알만수르 헌법재판소 소장이 임시 대통령을 맡게 됐다. 이집트는 시민혁명으로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퇴진한 바 있어 아랍권에서 유일하게 지도자 2명을 축출한 국가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무르시 이전에 축출된 다른 장기 독재자 4명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본국에서 쫓겨났다. `아랍의 봄`으로 가장 먼저 권력에서 쫓겨난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은 2011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튀니지 법원은 지난해 궐석재판에서 벤 알리에게 시위를 유혈 진압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카다피는 `42년간 세계 최장수 독재`라는 기록을 남기고 2011년 10월 고향 시르테 인근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무바라크는 사퇴 이후 15개월여 만에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카이로 남부 토라 교도소에 수용됐다. 다만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권좌를 부통령이던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에게 물려준 후 국민의회당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아랍 독재자 대부분은 이처럼 쓸쓸한 최후를 맞았으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건재하다. 알아사드는 30년 동안 집권한 부친을 이어 대통령직에 오른 지 13년째 접어들었다. 

한편 이집트 군부가 임시대통령으로 지목한 알만수르는 1992년부터 헌법재판소 부소장으로 있다가 무르시 대통령의 실각 이틀 전인 지난 1일에야 헌재소장에 취임했다. 그는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과 함께 당분간 정국의 중심에 설 주요 인사로 평가된다. 

압둘라 파티 이집트 판사클럽 부대표는 "알만수르는 판사 시절 권력과 인습에 굴하지 않고 판결을 내렸다"고 칭송다. 무바라크와 무르시 시절에도 권력에 항거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바라크와 무르시 시절에도 권력에 항거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집트 군부가 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새 선거법을 정비하는 데 그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알만수르는 카이로대학을 거쳐 프랑스 엘리트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에서 수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