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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 Knowledges

월가시위 (Occupy Wall Street)

2011년 빈부격차 심화와 금융기관의 부도덕성에 반발하면서 미국 월가에서 일어난 시위.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으나, 뚜렷한 시위목표를 제시하지 못한 한계를 남기며 73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됨.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신자본주의의 문제점과 금융기관들의 부도덕성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남김


온라인 잡지 <애드버스터스>가 2011년 7월 13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제안하면서 그해 9월 17일부터 시작된 시위다.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를 구호로 한 시위의 첫날은 발원지인 뉴욕 맨해튼 주코티 공원에 1000여 명이 모이는 데 그쳤으나, 이후 경찰의 강제진압 사실이 알려지며 시위대에 대한 공감이 확산돼 점차 그 인원이 늘어났다. 이후 시위는 보스턴,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수도 워싱턴 D.C. 등 미국의 주요 도시로 번져나가며 점차 그 규모가 커졌다.

특히 시위대는 10월 15일을 '국제행동의 날'로 지정하여 시위를 전 세계로 파급시켰다. 이날 우리나라를 비롯, 유럽과 아시아 등 82개국ㆍ900여 개 도시에서 유사한 형태의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1% 대 99%'라는 빈부격차 심화에 대한 공감과 분노가 전 세계적 현상임을 반영했다. 이 월가시위의 핵심은 '최고 부자 1%에 저항하는 99% 미국인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구호에 있다. 시위대들의 직접적인 불만은 빈부격차로, 1 대 99라는 자극적인 구도가 등장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누적된 상대적 박탈감에 기반한다. 

미국 정부는 2008년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금융회사 등을 살리기 위해 국민 혈세로 모은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을 월가에 투입했으나, 월가 금융회사들은 보너스만으로 200억 달러를 나눠 갖는 등 돈잔치를 벌였다. 반면 2011년 8월 말 미국에서 압류주택 통보를 받은 주택은 전달보다 7% 늘어나며 9개월 연속 증가하는 등 2008년 이래 국민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이처럼 사상 최대에 다다른 빈부격차가 이번 갈등을 촉발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필라델피아에 남아 있던 시위대가 2011년 11월 30일 경찰에 의해 해산되면서 반(反)월가시위는 사실상 73일 만에 막을 내렸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바탕으로 시작된 시위는 뚜렷한 시위목표와 요구사항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남겼다. 하지만 월가시위는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경종을 올렸고, 소득 양극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월가(Wall Street)

뉴욕의 맨해튼섬 남단부에 있는 거리로, 뉴욕 증권거래소ㆍ미 연방준비은행을 비롯한 세계적인 금융기관이 대거 몰려 있는 곳이다. 미국의 금융 중심가이자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상징으로 거론된다. 1793년 월가에 뉴욕증권거래소가 설립되면서부터 미국 금융산업의 요람으로 부상했다. 미국 기업들은 월가 증권거래소에서 자본을 모아 산업을 발전시켰고, 이후 투자은행과 신용평가사들도 우후죽순 설립되면서 오늘날의 월가에 이르게 되었다.